독일 중북부의 도시 카셀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전시회로 5년에 한번씩 개
최된다.1937년 독일 나치에 의해서 퇴폐예술로 낙인 찍혔던 모더니즘 미술운동에 대한 새로
운 시각을 제시하고, 전후 독일의 새로운 미술 움직임에 대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1955년 작가 아놀드 보데(Arnold Bode)에 의해 창설되었다.
2002년 6월8일 개막된 제11회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11)는 오쿠이 엔벤조(Okwui
Enwezor,제11회 `도큐멘타전`의 예술 총감독)의 지휘 아래 9월 15일까지 열렸다. `세계 속에
서의 평화`라는 행사 슬로건 아래, 기존의 `도큐멘타`보다 더 많은 필름-다큐멘터리 상영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테러의 참상, 평화의 호소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대규모로 선보였다.
Leitmotifs
documenta 12 has three leitmotifs. It is no accident that they take the form of questions. After all, we create an exhibition in order to find something out. Here and there, these motifs may correspond, overlap, or disintegrate – like a musical score.
Is modernity our antiquity? This is the first question. It is fairly obvious that modernity, or modernity’s fate, exerts a profound influence on contemporary artists. Part of that attraction may stem from the fact that no one really knows if modernity is dead or alive. It seems to be in ruins after the totalitarian catastrophes of the 20th century (the very same catastrophes to which it somehow gave rise). It seems utterly compromised by the brutally partial application of its universal demands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or by the simple fact that modernity and coloniality went, and probably still go, hand in hand. Still, people’s imaginations are full of modernity’s visions and forms (and I mean not only Bauhaus but also arch-modernist mind-sets transformed into contemporary catchwords like “identity” or “culture”). In short, it seems that we are both outside and inside modernity, both repelled by its deadly violence and seduced by its most immodest aspiration or potential: that there might, after all, be a common planetary horizon for all the living and the dead.
What is bare life? This second question underscores the sheer vulnerability and complete exposure of being. Bare life deals with that part of our existence from which no measure of security will ever protect us. But as in sexuality, absolute exposure is intricately connected with infinite pleasure. There is an apocalyptic and obviously political dimension to bare life (brought out by torture and the concentration camp). There is, however, also a lyrical or even ecstatic dimension to it – a freedom for new and unexpected possibilities (in human relations as well as in our relationship to nature or, more generally, the world in which we live). Here and there, art dissolves the radical separation between painful subjection and joyous liberation. But what does that mean for its audiences?
The final question concerns education: What is to be done? – Artists educate themselves by working through form and subject matter; audiences educate themselves by experiencing things aesthetically. How to mediate the particular content or shape of those things without sacrificing their particularity is one of the great challenges of an exhibition like documenta. But there is more to it than that. The global complex of cultural translation that seems to be somehow embedded in art and its mediation sets the stage for a potentially all-inclusive public debate (Bildung, the German term for education, also means “generation” or “constitution,” as when one speaks of generating or constituting a public sphere). Today, education seems to offer one viable alternative to the devil (didacticism, academia) and the deep blue sea (commodity fetishism).
Roger M. Buergel, December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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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겔 인터뷰_카셀도큐멘타2007_ 조이한 번역
2007년 카셀 도큐멘타 예술총감독 비인의 전시기획자 뷔르겔 인터뷰_독일잡지사
뷔르겔 씨, 다음 도큐멘타 예술감독과 아름다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때문
에 어째서 우리가 거의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만 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뷔르겔: 설명할 수 없어요. 그 점에 대해서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어요. 그것은 당신의 문
제입니다, 그것을 당신은 당신이 아는 분석가와 이야기를 해야만 할겁니다.
조언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우리들을 계속 도와줄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들은
도큐멘타가 오래 전부터 더 이상 아름다움과 감각의 축제로 인식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양
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이 예술의 척도로서는 너무 통속적이고, 또 너무
순진하고 너무 강렬한 것인가요?
뷔르겔: 아름다움은 어느 때 보다도 더 강한 전투적 개념이 되었어요 그리고 옹호자나 적대
자 모두에 의해서 전략적으로 사용되지요. 당신을 안심시킬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독일에,
예를 들면 초기낭만주의 시대의 독일에 강력한 뿌리를 두고 있는 아주 오래된 미학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당신에게 말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에게서 적임자를 찾은 셈이군요. 한 세기 동안의 충격이 지배한 이후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전의 미적 이상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죠. 단지 반어
적 인용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지요. 당신이 이런 발전의 주인공 중 하나인가요?
뷔르겔: 그것은 과장이예요. 하지만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작업했던 예술가들은 실제로 더
이상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문제가 없어요. 새 도큐멘타 전시회에서는 아름다움이
주도적일 것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주 훌륭한 예술가들과 작업함으로써 그렇게 만들겠습
니다.
아름다움이 당신에게는 대담하고, 거친 추상의 결과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주관하는 도큐
멘타에서 예외적으로 감각적이고 서술적으로 진행될 건가요?
뷔르겔: 대단히 감각적으로 진행될 겁니다.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만 감각적으로 침묵을 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전시기획자로서 , 나는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해왔지요. 사람은 한 개의 전시공간이 거의 콩스타블의 회화를 연상시킬 수 있을 정도로 빛
과 색과 구성을 가지고서 마술을 부릴 수 있지요. 그 점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끄집어낼
수 있고, 작품의 내용, 단순한 언급을 넘어서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죠. 많은 전시기획자들
이 아직까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렇지만 자율적 미학적 형식이 내게는 중요해요. 전
시라는 종합예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현대예술작품 중에서 어떤 작품이 특히 아름다움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요?
뷔르겔: 이 점에서 베를린 화가 디륵 슈미트의 환상적 회화나 알레잔드라 리에라의 사진을 생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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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도큐멘타에 참여한 아르헨티나인을 말하나요?
뷔르겔: 그녀의 작품 중에서 아르헨티나-볼리비아 국경을 따라 가는 기차에서 찍은 사진
연작집이 있었요. 리에라는 그 기차에 타고있는 관광객과 밖의 인디언들을 아주 흥미롭게
촬영했어요. 화면은 완벽하게 비교육적이고, 아주 지나칠 정도로 뛰어난 날카로움을 지닌
채 촬영되었죠. 그것들은 색의 깊이와 구성과 관련돼서 사실적이며 아주 아주 아름다워요.
인류학적 문제가 아름답게 포장되어서 관객에게 제공되어야만 한다는 것 처럼 들리는군요.
뷔르겔: 화면들은 그것이 동시에 정치 사회적 날카로움을 담고있기 때문에 덜 아름답게 되
는 것은 아니죠.
오랫동안 예술에 관해서, 특히 도큐멘타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로부터 세계와 사회를 비판
하는 내용이 아름다운 형식으로 요구되었지요.
뷔르겔: 당신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어쨌든 나는 형식적이고 미학적인 질에 가치를
둡니다. 그 점에서 맞지 않으면 나는 어떤 작품도 전시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 말은 지
난 2002년 전시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죠. 그 때 무릎을 꿇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들
이. 예를 들면 제임스 콜맨의 프로젝트와 같은 작품들이 참가했었죠. 이같은 문제점을 나는
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도큐멘타의 다른 점이 나를 방해하지요.
그게 뭐지요?
뷔르겔: 뷔르겔 남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지정학적 정치적 정체성을 보여주도록 강요되었
지요. 그 전시회에 이누이트와 에스키모도 참가를 할 수 있었을 정도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가능한 한 하얗게 그려야만 되지요.
그가 당신에게는 어떤 그림을 제공해야만 하지요?
뷔르겔: 그가 원하는 것이죠. 내 경우에 예술가들은 실제로 전시이전에 빈 지도를 지니게
될 것이고, 나는 그들에게 강령적으로 무엇인가를 불어 넣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재질과 내
용으로 작업을 해야만 하는지를 그들에게 미리 정해주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겁니다. 전시기
획자로 나는 혼합이 올바르게 되고 있는지만을 주의해서 보면 되지요.
지금까지 도큐멘타에서 아쉽게 여겨졌던 것, 즉 유머도 이런 혼합물에 들어갈 수 있나요?
뷔르겔: 나는 그것을 분명 배제하지는 않아요.
당신은 어떻게 아도르노를, 현대예술의 진정성이 깃든 „불협화음“, 그러니까 현대예술의 추
악함을 찬양했고 가장 훌륭한 작품은 더 이상 공예적 작품이 아닌 작품이라고 말했던 현대
예술을 위해서 싸웠던 전사를 옹호할 수 있지요.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지요. 관객들
은 여러 해 동안 거친 개념예술과 어떤 것을 거부하는 다른 행동으로 괴로움을 겪었지요.
뷔르겔: 하지만 개념예술은 수 십년 전에 이미 죽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직후 시
대의 이 예술형식은 정당성을 지녔지요. 젊은 예술가들은 그 모든 것에서 자신들이 마음대
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완결된 시대로 보죠. 이것은 우리가 오래 전에 극복할 수 있었던
추상예술에도 그대고 적용되지요. 당신이 이탈리아의 현대예술을 보시게 되면, 당신은 즉시
이 예술이 엄청나게 형편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아마도 이탈리아인들이 추상이
라는 얼음지옥을 결코 통과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되는 것, 예를 들면 이상적으로 구성된 육체나 전원적 풍
경의 연출이 광고에서 은신처를 발견했지요. 오래 전부터 광고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규정하고 있지요. 도큐멘타의 주제가 될 수 있나요?
뷔르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들이 일종의 광고필름 속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
을 받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이같은 주제를 단순하게 형편없는 네온광고문구를
인용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을 다시 삶으로
데려갈 수 있는가에 관해서 질문을 해야만 해요. 나는 가능한 모든 매체의 매혹적 형상들을
가지고 관객에게 자신들이 실제로 세계의 한 부분이고, 그들이 이 한 부분을 형상화할 수 있
다는 감정과 의식을 전달해주고 싶습니다.
이전의 다른 어떤시대보다도 20세기 초는 예술과 삶의 통일을 요구했지요. 이것이 당신이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인가요?
뷔르겔: 나는 전혀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실제로 오늘날의 아름다움은 전체적인
완결성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어요. 예술은 그것이 삶이 지닌 리듬의 한 부분이 될 때 비로
소 아름답게 되지요. 고통이나 지루함과 마찬가지로 즐거움, 예를 들면 식당을 가는 것 등도
삶의 리듬에 속하지요
지루함, 고통이라고요? 그렇다면 예술이란 보편적 카타르시스로 종결되는 가학적 특성을
지닌 일종의 정화의식인가요?
뷔르겔: 나는 그것을 차라리 스포츠적으로 이해합니다. 만약 내가 그림을 관찰하면, 그것은
두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처음 30분은 멋지죠, 다음 30분은 지루하고, 하지만 끝까지 견디
면 사람들은 2시간 후에 항상 그림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요. 수영에서도 비슷하지요. 처
음에는 자유롭게 수영을 하지요, 그리고 나서 고통스럽게 되고, 그 다음에는 일종의 도취상
태에 빠지게 되지요
후회 없이는 즐거움도 없다, 더 정확하게는 먼저 후회를 하고 다음에 즐거움을, 이라는 말같
군요. 바로크 시대의 축제처럼 커다란 지성이 없는 바쿠스적 형태의 즐거움을 상상할 수 있
나요?
뷔르겔: 어떤 축제가 지성이나 날카로움이 없이도 진행되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쉽게 맹숭
맹숭하게 되지요. 그 점에서 프랑스인들이 에스프리라고 부르는 중요한 요소가 문제가 되지
요. 왜냐하면 기쁨이란 실제로는 정신과도 일정한 관계가 있는 것이니까요. 아름다움도 마
찬가지죠. 그 때문에 나는 순수한 전시 스펙타클을 좋아하지 않아요. 예술이 단순하게 소비
되는 것이 나를 방해하지요.그것은 다시금 상당히 아도르노 말처럼 들리는군요. 하지만 관
중은 그같은 이벤트를 아주 좋아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벌써 3십만명이 베를린에서 열
리는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로 몰려오는 것이죠, 그 전시회에서는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
한 걸작들이 제공되고 있지요. 앞으로도 그렇게만 되면, 9월까지 지난 도큐멘타에서 이러
저리 다닌 관객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회를 보게 될겁니다그것은 아마도 꽉 찬 공
간들 때문에 즐거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겁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독일의 수정주의로 잘
설명이 될 수 있지요.
아하 그런가요?
뷔르겔: 모두들 눈을 꽉감고 베를린이 잠시나마 현대의 중심지라고 공상을 하지요. 이 도시
는 이전에는 문화의 중심지였고 실제로 다시 그렇게 될 수도 있기는 하지요.어쩌면 관객들
은 그 시대, 특히 문화가 아주 살아 있었고 열정적으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20년대로 돌아
가기를 바라는지도 모르죠. 내가 생각하기에 이같이 관객이 밀려드는 것은 정열로 소급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작품의 아름다움이 교양목록의 단순한 구성요소로 이해되면, 그것은 오
히려 노예적으로 굴복된 것이죠. 수도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공백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을 잊어서는 안되요. 이 공백을 진지함을 가장해서 채우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엄청난 관객
의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 있지요. 베를린에는 실제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진 전시회들
이 있지요. 알테스 뮤제움에서 열리는 프랑스 쟝르회화에 관한 전시회가 그래요.
18세기 프랑스 쟝르 회화는 아우라적 힘과 거의 여성적 아름다움으로 더 유명하지요.
뷔르겔: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지요. 고전적 아름다움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
실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물론 내가 열광할 수 있는 아주 많은 예술자의 고전작가들이 있지
요. 예를 들자면 르네상스 화가인 틴도레토죠. 그같은 거장의 솜씨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경
탄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아름답다고 인지되는 것은 항상 각 시대의 취향에 달려 있기도 하죠. 이탈리아 철
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가을에 „아름다움의 역사“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지요. 그는 미리
루벤스가 피카소의 작품들을 아름답다고 느낄 것인가라는 추측을 했고, 결코 그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뷔르겔: 그 점에서 그가 잘못 생각했다고 믿어요. 루벤스는 간단하게 그렇게 하지는 않을겁
니다. 그는 차별화해서 판단할 겁니다. 1930, 1931년에 만들어진 피카소의 작품들, 마리-테
레즈 발터의 초상화들은 루벤스의 마음에 아주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초기의 피카소 작품
전체는 저항할 수 없는 작품이죠. 피카소도 확실히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극복하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지요. 아름다움의 개념이 그에게 대단히 광범위했었다는 것은 아주 흥미진진한
사실이죠. 그리고 그 점에서 나는 다시 완결성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람들은
피카소의 전체 삶의 형식을, 깐느에 있는 장대한 빌라와 연관관계에서 그리고 모든 염문과
의 관계에서 그의 예술을 다시 한 번고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술사학자들 사이
에서는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어요,
피카소는 코타주르로 칩거를 했고, 베를린 출신인 당신은 아름다움으로 넘쳐나는 비인을 제
2의 고향으로 선택했지요. 두 장소는 혁명적 예술활동을 위한 근거지로서는 이상적이지 않
지요.
뷔르겔: 나는 세상을 항상 새롭게 보려고 하지 그것을 뒤엎으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비인
은 아주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지요. 그리고 당신이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다면 나는
아름다운 부인과 아름다운 아이들이 둘 있지요. 우리가 공장의 뒷편이 아니라 아름다운 집
에서 살고 있으며, 집천창이 높고 벽난로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요. 그리고 나와 내 부인
은 아름다운, 그러니까 특별히 의식적 삶을 영위하는 것에 커다란 가치를 두고 있어요. 아
름다움에 관해서 그것으로 충분한가요?
아니죠. 당신은 비인 예술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지요. 그처럼 많은 아름다움 가운데서 어
떤 작품들이 생겨날 수 있었지요?
뷔르겔: 아름다운 작품이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만든 스케
치들을 회화로 옮겨 그렸고 이 그림 밑에 버지니아 울프에 나오는 텍스트를 놓는 방식으
로 실제 아주 낭만적으로 실험을 했지요, 이 실험에서 텍스트와 그림언어 사이의 상호작용
이 나의 흥미를 끌었지요
당신이 책임을 맡은 도큐멘타에서는 2002년과 어떤 점이 달라질가요?
뷔르겔:나는 아직 어떤 이름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한 가지는 확실해요. 즐거움과 아름다움
은 선동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명상, 즉 멈추어선 상태에서 생겨나지요. 관객과 작품들은
호흡하기 위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나는 믿어요. 그런 조건을 만들어야만 해요. 그리고 우리
가 그렇게 할 겁니다.
인류는 아름다움없이 살아갈 수 없나요?
뷔르겔: 당신은 먼저 인류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뷔르겔씨,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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