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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도큐멘타_바젤_베니스

카셀 | 2007.07.30 00:12 | hit. 10904
카셀도큐멘타_바젤_베니스    Artists_Expo

2007/06/23 10:16

http://blog.naver.com/choicreation/100038879669

카셀토큐멘타 11

독일 중북부의 도시 카셀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전시회로 5년에 한번씩 개

최된다.1937년 독일 나치에 의해서 퇴폐예술로 낙인 찍혔던 모더니즘 미술운동에 대한 새로

운 시각을 제시하고, 전후 독일의 새로운 미술 움직임에 대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1955년 작가 아놀드 보데(Arnold Bode)에 의해 창설되었다.



2002년 6월8일 개막된 제11회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11)는 오쿠이 엔벤조(Okwui

Enwezor,제11회 `도큐멘타전`의 예술 총감독)의 지휘 아래 9월 15일까지 열렸다. `세계 속에

서의 평화`라는 행사 슬로건 아래, 기존의 `도큐멘타`보다 더 많은 필름-다큐멘터리 상영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테러의 참상, 평화의 호소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대규모로 선보였다.

Leitmotifs

documenta 12 has three leitmotifs. It is no accident that they take the form of questions. After all, we create an exhibition in order to find something out. Here and there, these motifs may correspond, overlap, or disintegrate – like a musical score.

Is modernity our antiquity?
This is the first question. It is fairly obvious that modernity, or modernity’s fate, exerts a profound influence on contemporary artists. Part of that attraction may stem from the fact that no one really knows if modernity is dead or alive. It seems to be in ruins after the totalitarian catastrophes of the 20th century (the very same catastrophes to which it somehow gave rise). It seems utterly compromised by the brutally partial application of its universal demands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or by the simple fact that modernity and coloniality went, and probably still go, hand in hand. Still, people’s imaginations are full of modernity’s visions and forms (and I mean not only Bauhaus but also arch-modernist mind-sets transformed into contemporary catchwords like “identity” or “culture”). In short, it seems that we are both outside and inside modernity, both repelled by its deadly violence and seduced by its most immodest aspiration or potential: that there might, after all, be a common planetary horizon for all the living and the dead.

What is bare life?
This second question underscores the sheer vulnerability and complete exposure of being. Bare life deals with that part of our existence from which no measure of security will ever protect us. But as in sexuality, absolute exposure is intricately connected with infinite pleasure. There is an apocalyptic and obviously political dimension to bare life (brought out by torture and the concentration camp). There is, however, also a lyrical or even ecstatic dimension to it – a freedom for new and unexpected possibilities (in human relations as well as in our relationship to nature or, more generally, the world in which we live). Here and there, art dissolves the radical separation between painful subjection and joyous liberation. But what does that mean for its audiences?

The final question concerns education: What is to be done? – Artists educate themselves by working through form and subject matter; audiences educate themselves by experiencing things aesthetically. How to mediate the particular content or shape of those things without sacrificing their particularity is one of the great challenges of an exhibition like documenta. But there is more to it than that. The global complex of cultural translation that seems to be somehow embedded in art and its mediation sets the stage for a potentially all-inclusive public debate (Bildung, the German term for education, also means “generation” or “constitution,” as when one speaks of generating or constituting a public sphere). Today, education seems to offer one viable alternative to the devil (didacticism, academia) and the deep blue sea (commodity fetishism).

Roger M. Buergel, December 2005

뷔르겔 인터뷰_카셀도큐멘타2007_ 조이한 번역

2007년 카셀 도큐멘타 예술총감독 비인의 전시기획자 뷔르겔 인터뷰_독일잡지사

뷔르겔 씨, 다음 도큐멘타 예술감독과 아름다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때문

에 어째서 우리가 거의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만 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뷔르겔: 설명할 수 없어요. 그 점에 대해서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어요. 그것은 당신의 문

제입니다, 그것을 당신은 당신이 아는 분석가와 이야기를 해야만 할겁니다.

조언 고맙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우리들을 계속 도와줄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들은

도큐멘타가 오래 전부터 더 이상 아름다움과 감각의 축제로 인식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양

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이 예술의 척도로서는 너무 통속적이고, 또 너무

순진하고 너무 강렬한 것인가요?

뷔르겔: 아름다움은 어느 때 보다도 더 강한 전투적 개념이 되었어요 그리고 옹호자나 적대

자 모두에 의해서 전략적으로 사용되지요. 당신을 안심시킬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독일에,

예를 들면 초기낭만주의 시대의 독일에 강력한 뿌리를 두고 있는 아주 오래된 미학전통의

영향을 받았다고 당신에게 말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에게서 적임자를 찾은 셈이군요. 한 세기 동안의 충격이 지배한 이후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전의 미적 이상이 되돌아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죠. 단지 반어

적 인용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지요. 당신이 이런 발전의 주인공 중 하나인가요?


뷔르겔: 그것은 과장이예요. 하지만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작업했던 예술가들은 실제로 더

이상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문제가 없어요. 새 도큐멘타 전시회에서는 아름다움이

주도적일 것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주 훌륭한 예술가들과 작업함으로써 그렇게 만들겠습

니다.

아름다움이 당신에게는 대담하고, 거친 추상의 결과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주관하는 도큐

멘타에서 예외적으로 감각적이고 서술적으로 진행될 건가요?

뷔르겔: 대단히 감각적으로 진행될 겁니다.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만 감각적으로 침묵을 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전시기획자로서 , 나는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해왔지요. 사람은 한 개의 전시공간이 거의 콩스타블의 회화를 연상시킬 수 있을 정도로 빛

과 색과 구성을 가지고서 마술을 부릴 수 있지요. 그 점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끄집어낼

수 있고, 작품의 내용, 단순한 언급을 넘어서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죠. 많은 전시기획자들

이 아직까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렇지만 자율적 미학적 형식이 내게는 중요해요. 전

시라는 종합예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현대예술작품 중에서 어떤 작품이 특히 아름다움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요?

뷔르겔: 이 점에서 베를린 화가 디륵 슈미트의 환상적 회화나 알레잔드라 리에라의 사진을 생각하지요.

-

--지난 해 도큐멘타에 참여한 아르헨티나인을 말하나요?

뷔르겔: 그녀의 작품 중에서 아르헨티나-볼리비아 국경을 따라 가는 기차에서 찍은 사진

연작집이 있었요. 리에라는 그 기차에 타고있는 관광객과 밖의 인디언들을 아주 흥미롭게

촬영했어요. 화면은 완벽하게 비교육적이고, 아주 지나칠 정도로 뛰어난 날카로움을 지닌

채 촬영되었죠. 그것들은 색의 깊이와 구성과 관련돼서 사실적이며 아주 아주 아름다워요.

인류학적 문제가 아름답게 포장되어서 관객에게 제공되어야만 한다는 것 처럼 들리는군요.

뷔르겔: 화면들은 그것이 동시에 정치 사회적 날카로움을 담고있기 때문에 덜 아름답게 되

는 것은 아니죠.

오랫동안 예술에 관해서, 특히 도큐멘타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로부터 세계와 사회를 비판

하는 내용이 아름다운 형식으로 요구되었지요.



뷔르겔: 당신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어쨌든 나는 형식적이고 미학적인 질에 가치를

둡니다. 그 점에서 맞지 않으면 나는 어떤 작품도 전시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 말은 지

난 2002년 전시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죠. 그 때 무릎을 꿇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들

이. 예를 들면 제임스 콜맨의 프로젝트와 같은 작품들이 참가했었죠. 이같은 문제점을 나는

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도큐멘타의 다른 점이 나를 방해하지요.

그게 뭐지요?



뷔르겔: 뷔르겔 남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지정학적 정치적 정체성을 보여주도록 강요되었

지요. 그 전시회에 이누이트와 에스키모도 참가를 할 수 있었을 정도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가능한 한 하얗게 그려야만 되지요.



그가 당신에게는 어떤 그림을 제공해야만 하지요?

뷔르겔: 그가 원하는 것이죠. 내 경우에 예술가들은 실제로 전시이전에 빈 지도를 지니게

될 것이고, 나는 그들에게 강령적으로 무엇인가를 불어 넣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재질과 내

용으로 작업을 해야만 하는지를 그들에게 미리 정해주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겁니다. 전시기

획자로 나는 혼합이 올바르게 되고 있는지만을 주의해서 보면 되지요.



지금까지 도큐멘타에서 아쉽게 여겨졌던 것, 즉 유머도 이런 혼합물에 들어갈 수 있나요?

뷔르겔: 나는 그것을 분명 배제하지는 않아요.

당신은 어떻게 아도르노를, 현대예술의 진정성이 깃든 „불협화음“, 그러니까 현대예술의 추

악함을 찬양했고 가장 훌륭한 작품은 더 이상 공예적 작품이 아닌 작품이라고 말했던 현대

예술을 위해서 싸웠던 전사를 옹호할 수 있지요.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야기했지요. 관객들

은 여러 해 동안 거친 개념예술과 어떤 것을 거부하는 다른 행동으로 괴로움을 겪었지요.

뷔르겔: 하지만 개념예술은 수 십년 전에 이미 죽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직후 시

대의 이 예술형식은 정당성을 지녔지요. 젊은 예술가들은 그 모든 것에서 자신들이 마음대

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완결된 시대로 보죠. 이것은 우리가 오래 전에 극복할 수 있었던

추상예술에도 그대고 적용되지요. 당신이 이탈리아의 현대예술을 보시게 되면, 당신은 즉시

이 예술이 엄청나게 형편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아마도 이탈리아인들이 추상이

라는 얼음지옥을 결코 통과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되는 것, 예를 들면 이상적으로 구성된 육체나 전원적 풍

경의 연출이 광고에서 은신처를 발견했지요. 오래 전부터 광고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규정하고 있지요. 도큐멘타의 주제가 될 수 있나요?



뷔르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들이 일종의 광고필름 속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

을 받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이같은 주제를 단순하게 형편없는 네온광고문구를

인용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들을 다시 삶으로

데려갈 수 있는가에 관해서 질문을 해야만 해요. 나는 가능한 모든 매체의 매혹적 형상들을

가지고 관객에게 자신들이 실제로 세계의 한 부분이고, 그들이 이 한 부분을 형상화할 수 있

다는 감정과 의식을 전달해주고 싶습니다.

이전의 다른 어떤시대보다도 20세기 초는 예술과 삶의 통일을 요구했지요. 이것이 당신이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인가요?



뷔르겔: 나는 전혀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실제로 오늘날의 아름다움은 전체적인

완결성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어요. 예술은 그것이 삶이 지닌 리듬의 한 부분이 될 때 비로

소 아름답게 되지요. 고통이나 지루함과 마찬가지로 즐거움, 예를 들면 식당을 가는 것 등도

삶의 리듬에 속하지요

지루함, 고통이라고요? 그렇다면 예술이란 보편적 카타르시스로 종결되는 가학적 특성을

지닌 일종의 정화의식인가요?

뷔르겔: 나는 그것을 차라리 스포츠적으로 이해합니다. 만약 내가 그림을 관찰하면, 그것은

두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처음 30분은 멋지죠, 다음 30분은 지루하고, 하지만 끝까지 견디

면 사람들은 2시간 후에 항상 그림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요. 수영에서도 비슷하지요. 처

음에는 자유롭게 수영을 하지요, 그리고 나서 고통스럽게 되고, 그 다음에는 일종의 도취상

태에 빠지게 되지요


후회 없이는 즐거움도 없다, 더 정확하게는 먼저 후회를 하고 다음에 즐거움을, 이라는 말같

군요. 바로크 시대의 축제처럼 커다란 지성이 없는 바쿠스적 형태의 즐거움을 상상할 수 있

나요?


뷔르겔: 어떤 축제가 지성이나 날카로움이 없이도 진행되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쉽게 맹숭

맹숭하게 되지요. 그 점에서 프랑스인들이 에스프리라고 부르는 중요한 요소가 문제가 되지

요. 왜냐하면 기쁨이란 실제로는 정신과도 일정한 관계가 있는 것이니까요. 아름다움도 마

찬가지죠. 그 때문에 나는 순수한 전시 스펙타클을 좋아하지 않아요. 예술이 단순하게 소비

되는 것이 나를 방해하지요.그것은 다시금 상당히 아도르노 말처럼 들리는군요. 하지만 관

중은 그같은 이벤트를 아주 좋아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벌써 3십만명이 베를린에서 열

리는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로 몰려오는 것이죠, 그 전시회에서는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

한 걸작들이 제공되고 있지요. 앞으로도 그렇게만 되면, 9월까지 지난 도큐멘타에서 이러

저리 다닌 관객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회를 보게 될겁니다그것은 아마도 꽉 찬 공

간들 때문에 즐거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겁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독일의 수정주의로 잘

설명이 될 수 있지요.

아하 그런가요?



뷔르겔: 모두들 눈을 꽉감고 베를린이 잠시나마 현대의 중심지라고 공상을 하지요. 이 도시

는 이전에는 문화의 중심지였고 실제로 다시 그렇게 될 수도 있기는 하지요.어쩌면 관객들

은 그 시대, 특히 문화가 아주 살아 있었고 열정적으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20년대로 돌아

가기를 바라는지도 모르죠. 내가 생각하기에 이같이 관객이 밀려드는 것은 정열로 소급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작품의 아름다움이 교양목록의 단순한 구성요소로 이해되면, 그것은 오

히려 노예적으로 굴복된 것이죠. 수도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공백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을 잊어서는 안되요. 이 공백을 진지함을 가장해서 채우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엄청난 관객

의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 있지요. 베를린에는 실제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진 전시회들

이 있지요. 알테스 뮤제움에서 열리는 프랑스 쟝르회화에 관한 전시회가 그래요.

18세기 프랑스 쟝르 회화는 아우라적 힘과 거의 여성적 아름다움으로 더 유명하지요.

뷔르겔: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지요. 고전적 아름다움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

실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물론 내가 열광할 수 있는 아주 많은 예술자의 고전작가들이 있지

요. 예를 들자면 르네상스 화가인 틴도레토죠. 그같은 거장의 솜씨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경

탄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아름답다고 인지되는 것은 항상 각 시대의 취향에 달려 있기도 하죠. 이탈리아 철

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가을에 „아름다움의 역사“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지요. 그는 미리

루벤스가 피카소의 작품들을 아름답다고 느낄 것인가라는 추측을 했고, 결코 그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뷔르겔: 그 점에서 그가 잘못 생각했다고 믿어요. 루벤스는 간단하게 그렇게 하지는 않을겁

니다. 그는 차별화해서 판단할 겁니다. 1930, 1931년에 만들어진 피카소의 작품들, 마리-테

레즈 발터의 초상화들은 루벤스의 마음에 아주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초기의 피카소 작품

전체는 저항할 수 없는 작품이죠. 피카소도 확실히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극복하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지요. 아름다움의 개념이 그에게 대단히 광범위했었다는 것은 아주 흥미진진한

사실이죠. 그리고 그 점에서 나는 다시 완결성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람들은

피카소의 전체 삶의 형식을, 깐느에 있는 장대한 빌라와 연관관계에서 그리고 모든 염문과

의 관계에서 그의 예술을 다시 한 번고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술사학자들 사이

에서는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어요,

피카소는 코타주르로 칩거를 했고, 베를린 출신인 당신은 아름다움으로 넘쳐나는 비인을 제

2의 고향으로 선택했지요. 두 장소는 혁명적 예술활동을 위한 근거지로서는 이상적이지 않

지요.

뷔르겔: 나는 세상을 항상 새롭게 보려고 하지 그것을 뒤엎으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비인

은 아주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지요. 그리고 당신이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다면 나는

아름다운 부인과 아름다운 아이들이 둘 있지요. 우리가 공장의 뒷편이 아니라 아름다운 집

에서 살고 있으며, 집천창이 높고 벽난로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요. 그리고 나와 내 부인

은 아름다운, 그러니까 특별히 의식적 삶을 영위하는 것에 커다란 가치를 두고 있어요. 아

름다움에 관해서 그것으로 충분한가요?



아니죠. 당신은 비인 예술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지요. 그처럼 많은 아름다움 가운데서 어

떤 작품들이 생겨날 수 있었지요?


뷔르겔: 아름다운 작품이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만든 스케

치들을 회화로 옮겨 그렸고 이 그림 밑에 버지니아 울프에 나오는 텍스트를 놓는 방식으

로 실제 아주 낭만적으로 실험을 했지요, 이 실험에서 텍스트와 그림언어 사이의 상호작용

이 나의 흥미를 끌었지요

당신이 책임을 맡은 도큐멘타에서는 2002년과 어떤 점이 달라질가요?



뷔르겔:나는 아직 어떤 이름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한 가지는 확실해요. 즐거움과 아름다움

은 선동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명상, 즉 멈추어선 상태에서 생겨나지요. 관객과 작품들은

호흡하기 위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나는 믿어요. 그런 조건을 만들어야만 해요. 그리고 우리

가 그렇게 할 겁니다.

인류는 아름다움없이 살아갈 수 없나요?



뷔르겔: 당신은 먼저 인류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뷔르겔씨,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llection |한국의 아트 바젤을 기대하며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6-22 10:18


화상으로서의 일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단연 전 세계의 훌륭한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등 유럽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축제에 다녀왔는데, 베니스 비엔날레, 아트 바젤, 카셀 도큐멘
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등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애호가들의 대열에 끼어 현대미술 축제
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세계의 미술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
다.

그 중에서도 6월 13일 개막된 아트 바젤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미술시장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 화상이자 컬렉터인 에른스트 바이엘라(Ernst Beyeler)의 지휘 하에 지난 1969년에 첫

선을 보인 아트 바젤은, 전 세계에서 300여 개의 갤러리가 참여하며 5만5000여 명의 컬렉터

와 미술품 애호가, 미술관계자들이 매년 모이는 장소로서 자리잡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식 개막일 하루 전부터 전 세계에서 온 미술 애호가들과 취재진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상당수의 작품들은 공식 개막 전에 판매가 이루어졌다.

최고의 아트페어답게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에서부터 신진작가의 실험정신 강한 작품까

지 골고루 만날 수 있었다.

아트 바젤을 아트 바젤답게 하는 행사가 있는데, 바로 ‘아트 언리미티드(Art Unlimited)’와 ‘아

트 스테이트먼트(Art Statements)’이다. 아트 언리미티드는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전시가 쉽

지 않은 대형 설치작업이나 조각 시리즈 등 크기가 큰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인데, 주최 측의

전시 기획이 돋보이는 행사이다. 올해는 폴 매커시(Paul McCarthy)의 성에 대한 금기를 재

미있게 표현한 산타클로스 상과, 다니엘 뷰렌(Daniel Buren)의 설치작업을 비롯해 각종 설

치, 조각, 영상 작품이 선보였다.

또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개인전 형식으로 보여주는 아트 스테이트먼트에는 한국작가 양혜

규의 작품이 설치돼 눈길을 끌었다아트 바젤이 세계 최고의 미술시장으로 자리잡은 가장 큰

요인의 하나로, 주최 측의 기획력과 조직력을 꼽을 수 있다. 지난 35년 간 아트 바젤을 기획

해오면서 축적한 노하우와 차별화된 홍보 및 마케팅 전략은 해마다 아트 바젤이 세계 최고

의 아트페어임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주최 측과 공동으로 ‘그랜드 투어 2007’을 기획, 오프닝부터 행사기간 중의 숙박

과 교통정보를 제공하여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주최 측 간의 이러한 협력은 베니스 비엔날레와 아트 바젤, 그리고 다른 여러 미술관련 축제

에 참여한 전 세계 미술애호가와 미술관련 종사자, 일반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의 흐름과 시

장 동향을 파악하고 정보 교환을 가능케 하여, 행사들 간에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올해

에는 이러한 해외미술 축제에 관한 소식들 중에서 한국작가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자

주 들려와 더욱 기쁘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술시장의 활황과 대중화 분위기에 발맞추어 국가 차원에서 작가들을 지

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여러 국제 아트

페어와 비엔날레 등의 행사들이 좀 더 전문화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한국미술이 세

계의 미술시장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는 아트 바젤

과 같이 국제적 명성을 가진 행사가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스타일_artists

아티스트들의 패션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평소 그들은 멋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듯 굴지만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친 셔츠며 면바지, 심지어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작업

용 앞치마에서도 ‘멋진 그 무엇’이 뿜어져 나온다. 특히 세계 미술계 최정상을 달리는 아티

스트들은 작품성도 뛰어나지만 자기 연출에 있어서도 가공할 정도의 ‘완벽 스타일링’을 보

여준다. 멋 내지 않은 듯 하면서도 남다른 멋과 매력이 폴폴 우러나는 아티스트들. 그들의

남다른 스타일을 훔쳐본다.

생전에 ‘예술 테러리스트’임을 자임했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 백남준은 늘

쭈끌쭈글한 흰색 셔츠에, 검은 바지를 고집했다. 특이했던 것은 멜빵(서스펜더)을 반드시

착용했고, 싸구려 옷핀을 주르르 꽂았다는 점이다.

90년대 초 뉴욕에서 백남준을 만났을 때 “선생님, 멜빵까진 알겠는데 옷핀은 왜 이렇게 줄

줄이…”라고 물었더니 “아, 비상용으로 그만이야.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걸 옷핀으로 매달고

다니거든. 얼마나 쓸모 많은데… 그리고 이건, 내 스타일이라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계가 알아주는 스타작가임에도 백남준은 공식, 비공식 가리지 않고 어느 자리에서나 후

줄근한 흑백 상하패션에 옷핀까지 줄줄 매달고 다녔다. 신발도 3000~4000원짜리 중국산 헝

겊 운동화였다. 유치원생에게 실내화로 신으라고 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을, 진짜 ‘험블’한

신발이었다. 이 같은 ‘허름 패션’에도 백남준은 전혀 기죽지 않고, 막강 카리스마를 뿜어냈

다. 명품으로 쫙쫙 빼입은 뉴요커들 사이에서 백남준의 조촐(?)한 스타일은 오히려 돋보였

다.

백남준, 그라고 왜 멋진 옷이 없었겠는가. 명성에 비해 백남준이 너무 초라한 스타일만 구

사하자 보다 못한 지인들이 명품 셔츠며 구두를 선물했지만 한사코 ‘쭈그리 패션’으로 밀고

나간 그다. 백남준과는 달리 세련된 고급 패션을 즐겼던 부인 구보타 시케코 여사(비디오

아티스트)는 “좋은 옷 뒀다 뭐 하느냐고 ‘남준’을 수없이 채근했지만 소용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처럼 백남준은 패션은 매우 소박했지만 고국의 후배 작가나 현대미술 발전을 위

해선 거금을 척척 내놓았다. 뉴욕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순회전(과천 국립현대미술관서 열

렸다)도 그가 수억원을 쾌척하는 바람에 성사됐는데 별반 알려지지 않았다. 또 백남준은

‘한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 출범에도 크게 기여했다.

백남준뿐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패션은 일단 범상치 않다. 하나같이 고집이 있고, 원칙이 있

고, 콘셉트가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색과 소재를 잘 맞춘다. 미감과 안목에서 앞서는 이들

이니 코디네이션을 잘하는 건 당연하다.

국내 작가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작가를 꼽는다면 여성은 천경자, 남성은 박서보 화백을 꼽

을 수 있다. 두 사람은 지금 노년기에 접어들었지만 그야말로 ‘한 패션’했다.

천경자 화백은 워낙 독특한 외모에, 큰 키를 활용해 남이 입지 않는 스타일을 멋지게 소화

했다. 거의 빵떡만한 원색의 물방울 무늬가 화려하게 찍힌 파격적 두루마기를 30년 전에 맞

춰 입었는가 하면, 자신의 작품전 오프닝에는 화관까지 쓰고 나왔다. 천 화백과 가까운 박

명자 갤러리현대 사장은 “워낙 패션연출을 잘해 서늘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시대를 두세

발짝쯤 앞서갔다고 할까? 남들의 허를 찌르는 패션, 이국적인 패션으로 좌중을 늘 압도했

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 같은 멋쟁이는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의 천경자에 필적할 만한 이로는 설치미술가 오노 요코가 있다. 존 레논의 부인이었던

요코는 보이시한 커트머리에, 간결한 블랙패션이 트레이드 마크. 칠순이 넘었지만 너무나

‘시크’한 차림과 군살 하나 없는 몸매 때문에 서울전(로댕갤러리)을 위해 3년 전 내한했을

때 “40대 초반 같다”는 찬사가 터져 나왔다.

원로 남성작가 중 가장 돋보이는 박서보 화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멋쟁이. 근사한 추상미술

을 선보이는 그는 양복이면 양복, 구두면 구두, 백이면 백, 시계면 시계, 무엇이든 최상급으

로 스타일링해야 직성이 풀린다.

박 화백은 “미를 추구하는 작가라면 스타일도 최고여야 하지 않느냐. 나는 근사하고 똑 부

러지는 디자인이 있다면 천리길도 달려간다. 그렇다고 꼭 명품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사람

들이 나와 약속하면 ‘박서보가 오늘은 어떤 패션으로 등장할까’하고 설렌다는데 나는 그런

설렘을 계속 심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당당히 밝혔다. 그는 “은세공이 너무나 멋진 파

카만년필을 큰 맘 먹고 샀는데 택시에서 잃어버렸다. 한정생산된 거라 다시 못 구해 안타깝

다”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2년 전 작고한 영국 신사풍의 이대원 화백도 자타가 공인하는 멋쟁이였다. 자신이 나고 자

란 파주의 사과나무밭을 밝고 따뜻하게 묘사한 그림으로 유명한 그는 동그란 검정 안경에,

정갈하고 세련된 수트차림으로 귀족스런 멋을 풍겼다. 또 권옥연, 서세옥화백도 멋을 아는

원로화가들이다. 중견작가 중에는 이두식, 구본창, 김중만, 김용호가 멋쟁이로 꼽힌다. 이

두식 교수(홍익대, 서양화가)는 날렵한 정장이, 사진작가 구본창과 김중만, 김용호는 각기

개성을 잘 살린 스 타일로 ‘한 경지’를 보여준다.

젊은 작가로 내려가면 스타일리시한 아티스트들이 즐비하다.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멋이

무엇인지 보고 배운 데다, 외국유학을 다녀오거나 외국서 활동했던 이들이 많아 스타일 경

쟁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미국 유학파인 코디최와 월드스타인 이불은 가장

스타일이 훌륭한 작가로 꼽힌다.

또 재미작가인 마이클 주와 바이런 킴의 패션도 범상치 않다. 특히 코디최는 “작품도 비상

하지만 패션에 있어서도 국내 작가 중 단연 최고”라는 평판이 자자하다. 또 사석원 양만기

정연두 함진 이누리 등등도 저마다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가다.

외국 작가 중에는 매튜 바니,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트레시 에민, 바네사 비크로프트

등이 ‘당대 최고의 멋쟁이 작가’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매튜 바니와 제프 쿤스는 바로 광고

나 영화에 출연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스타일리시하다. 실제로 미국 출신의 전위미술가

매튜 바니는 예술성도 탁월하지만 워낙 자기연출에 있어서 가공할 정도로 창의적인 스펙

트럼(예술영화를 직접 제작하고 출연도 한다)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미술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한 요인이기도 한 것.

매튜바니는 이달 이탈리아판 ‘보그 워모’ 표지에 치와와를 얹은 독특한 모습으로 등장해

눈길을 모았다. 보그 워모는 이번에 2007베니스비엔날레와 카셀도큐멘타에 출품한 작가를

집중 소개하는 특집호를 펴냈는데, 표지인물로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매튜 바니가 낙점됐다.

매튜 바니는 비엔날레 기간 중 베니스 최고 명소인 페기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작고한 독일

거장 요셉 보이스와 2인전을 열면서 명성을 또다시 입증했다. 이번 보그 특집호에는 베니

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인 이형구가 럭셔리브랜드 트루사 르디의 멋진 패션을 입고

근사하게 등장해 한국 작가의 남다른 감각을 뽐냈다.

또 이탈리아관작가 주세페 페노네-프란체스코 베졸리를 비롯해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거

장 루이스 브르주아, 미국 작가 엘스워스 켈리, 영국 작가 트레이시 에민 등 세계 각국의

120여명의 작가가 막강 ‘포스(force)’가 팍팍 느껴지는 모습으로 등장해 시각적 즐거움을 선

사하고 있다. 이밖에 ‘세계 미술계 영향력 1위’인 독일의 지성파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미국작가 제프 쿤스 등은 그들의 남다른 스타일과 작업실이 아

예 2~8쪽 분량의 화보기사로 다뤄줬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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