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기타와 나" 휴먼메세지 잡지에서

카셀 | 2007.07.07 20:17 | hit. 4694
글쓴이 : 雪泉 원정미 번호 : 24조회수 : 192007.02.28 14:58
기타와 나
기타리스트 송 형 익
2007. 3.

1963년 어느 날, 나는 형이 가져온 기타와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지금 까지 이어지고 죽는 날까지 사랑하며 내 곁에 있어 줄 평생의 약속이 되었다. 결혼식장의 혼인서약처럼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죽는 날까지 변치 않을 약속.
그 당시는 통기타가 유행 했던 시절이었으나 나는 통기타에는 관심이 없었고, 조용한 클래식기타음악에 더욱 심취해 있었다.

그후 나는 몇 년 동안 모은 돈으로 자개로 장식된 클래식기타(세고비아-수제품)를 거금 7천원을 주고 장만하게 되었다. 그 당시 보통기타는 천원 내지 이천원 할 때였다.
새 기타를 가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매일 10시간씩 연습하기에 이르렀다. 저녁 10시 이후에는 집 근처 들판으로 나가 바위에 앉아서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2시까지 연습했다. 낭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집안에서 남들의 수면방해가 될까봐 쫓겨나야 하는 절실한 사정 때문이었다.
겨울철에는 영하의 혹한 속에 손이 꽁꽁 얼어붙었지만 기타에 빠진 나에게 추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30분 정도 음계연습을 하다보면 어느새 온 몸과 손에 열기가 나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모기들에게 뜯기면서 기타를 쳤다. 온 들판에 핀 꽃들과 풀벌레들이 청중이 되어 주는 시간인데 모기들은 흡혈기가 되어서 이 음악가의 피를 빨았다. 그렇게 매일 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야외콘서트를 열었었다. 친척 집 방문 때에도 항상 기타를 가지고 다니면서 밤에는 그 부근 어디에선가 연습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연습할 곳을 찾아 헤매다 쓰레기하치장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옆에서 발판 대신 연탄재를 받치고 연습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혹독한 훈련을 거듭한 것이 오늘날 나를 있게 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수년이 흐르자 나는 레슨과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상당한 수입도 얻게 되었지만, 국내에 기타 전공 교육 코스가 없어서 정통적 교육을 배운 후 후배를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두 딸(시예-52개월, 나예-18개월 때)을 남겨둔 채 홀연히 7년간의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들이었으나,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데에서 느끼는 희열과, 여러 나라 친구들과의 교제와 여행 등으로 유럽등지의 문화를 이해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거리악사’가 되어 여행경비를 충당해가며 유럽여행을 즐겼다. 그래서 친구들은 내 기타를 돈 나와라 뚝딱! 하면 돈이 나오는 ‘도깨비방망이’라 칭하고 부러워했었다.

언젠가 내가 꿈꾸던 명기를 사기 위해 전 유럽을 다니던 중 이태리 피사에 머물 때 피렌체에서 드디어 내가 찾던 명기를 만나게 되었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기뻤지만 내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그래서 부족한 돈은 미국의 형에게 부탁하고 며칠을 기다려 마침내 기타를 샀으나 피사로 돌아갈 차비가 모자랐다. 다시 거리악사가 되어 역전 지하통로에서 30분간 새로 산 기타로 연주하여 마련한 돈으로 피사에 돌아왔다. 그러나 피사에서 독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 하루는 ‘피사의 사탑’ 아래에서, 하루는 어느 카페에서 와인을 마시며 밤 새 연주를 하여 번 돈으로 돌아온 에피소드도 있다.

유학 중 유럽 각국의 ‘악기박물관’들을 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아시아의 진귀한 악기들까지도 그 곳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한국에도 이 같은 악기박물관이 꼭 있어야 하며, 이 악기들을 통해 여러 나라의 문화와 역사적 흐름을 보다 쉽고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유학가기 전부터 수집하던 악기들을 유학중 본격적으로 수집하게 되면서 30여 년 동안 500여 점의 세계 희귀 악기들을 소장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대를 이어 수집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국가에서 수집 전시해주면 좋겠지만, 더 늦기 전에 누군가는 해야 된다고 생각되어 힘든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에 “악기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을 숙원의 사업으로, 그 곳에선 악기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국제적인 문화 행사 및 교육, 문화체험의 공간으로 활용 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한다.

독일 FM방송사 초청 순회연주회를 할 때 연주한 ‘한민족의 얼’<자작품> 등의 연주가 FM방송을 통해 전 유럽에 퍼지면서 자작곡에 대한 출판 제의를 받아, 독일의 “Vogt & Fritz 음악출판사”에서 ‘한민족의 얼’ 등이 출간되어 유명 기타리스트들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당시 어렸던 두 딸도 대를 이어 선화예고, 서울음대기타전공 졸업 후 현재 독일유학 중에 있으며, 함께 송트리오로 활동하는 등 예중. 고 및 음대에 출강 및 연주활동과 레슨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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