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타음악의 역사

카셀 | 2006.03.14 14:42 | hit. 26575

한국 기타음악의 역사



한국에 서양 음악이 전해진 것은 이미 100년이 넘었으나, 클래식 기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근거 자료의 미흡으로 확실치 않으나, 다른 서양 음악과 함께 기타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을 통해서 전해졌다.


한국의 클래식기타의 발전사를 되돌아보면 최초의 연주가 있었던 1940년대로 본다.

당시 일본에서 공부한 정세원, 박철근, 김인걸, 이종석, 박승천, 이표, 황병갑, 이채진, 배영식 강우식 등 많은 기타 주자들은 광복이후 한국 기타음악을 발전시킨 주역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 정세원 씨가 1942년 10월 부민관(현재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국내에서는 최초로 기타 독주회를 가졌던 것은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전쟁과 굶주림의 역경 속에서 기타음악의 대를 잇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많은 음악가들이 기타 계를 떠나 다른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당시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몇몇 기록이 남겨졌는데 1945년 정세원, 김인걸 씨 등에 의한 기타 5중주단 결성, 1950년 `서울 기타애호가협회`창설‘, 및 1959년 `한국기타연주인협회`(현 한국기타협회) 결성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타음악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50년대의 원로들과 신진음악가들이 다시금 모였으며, 배영식씨 등에 의해 연주 및 교육의 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1961년에 열린 배영식 기타 독주회는 정세원 독주회 이후 19년만의 기타독주회였으며, 1965년 국내 최초의 외국인으로 독일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인 지그프리트 베렌트의 내한 연주회가 자주 열리면서 당시 열약했던 국내 기타 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 후 장피에르 쥬메 등 몇몇 외국 기타리스트들이 초청 연주회를 열었으며, 그 당시에는 지방에서부터 연주회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으며, 감명의 순간들을 맛보았다.


그 뒤 1969년 `한국클래식기타음악인협회`가 결성됨으로써 70년대 기타음악활성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72년부터 시작된 전국 기타콩쿠르 개최를 비롯하여, 그 동안의 일회성 연주회에서 전국순회연주회와 지속적인 정기 연주회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각 대학의 기타동아리가 연대 “오르페우스” 서울대의 "화현회“ 건국대의 ”뮤즈“ 등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면서 확산되었으며, 당시 김금헌을 회장으로 `한국기타연주가협회`가 만들어졌고, 그 후 한국기타애호가협회, 한국기타연맹, 한국기타 지도자회 등이 생겨났으며, `전국대학생기타연합회` 및 여러 아마추어 기타합주단 등에 의해 기타 음악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바야흐로 기타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그 여파로 ”세고비아, 가야, 오봉, 스즈끼, 세종, 원음, 예일, 성원, 성음, 전음, 유진기타 등 많은 기타제작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당시 대표적인 연주자로는 박윤관, 정진덕, 허병훈, 제정민, 배학수, 송형익, 이중주로는 조재경, 오세춘씨 사중주단으로는 서울 기타아카데미 등이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였으며, 합주 분야에서는 70년대부터 최근까지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리여석 기타 합주단`과 `서울아카데미합주단`이 있었다. 그리고 외국연주자들의 잦은 연주회로 점차 시각이 넓어졌으며, 그 여파로 80년대에는 유학의 전성기를 이루게 되면서 스페인 왕립음악원으로 유학한 문풍인, 허병훈, 신인근, 오승국, 이진아, 신경숙, 배성학, 안형수, 박종대, 나영수 등이며, 후라멩코기타로는 호세리(본명: 이훈)의 귀국으로 국내에서 그의 부인(후라멩코 무용가)과 함께 최근에 활동 중으로 기대가 된다. 그들 중 이명근, 김홍천, 주인철, 박헌수, 온광철 등은 귀국하지 않은 채 그 곳에서 활동하든가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도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독일 유학으로는 유민선, 이용수, 송형익, 이성우, 이판식, 한일수, 방효용, 이병우(오스트리아) 등이며, 미국 유학에는 오세곤, 권대순, 이병우 등이며, 외에도 불란서, 이태리 외 여러 나라에서 현재 유학하고 있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이들은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오늘날 기타연주회 및 기타전공 강사로서 각기 한국기타계의 발전을 위해 많은 활약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84년부터 많은 국내 연주자들의 유학과 발맞추어 국내 대학의 음대와 예고에 기타전공 과목이 신설되어 정규적인 교육이 시작된 것은 한국기타계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2-30년 앞서가고 있던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정규대학 내 기타전공과목이 적으며, 단지 사설 아카데미에서만 2-4년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84년 피어선 신학 대,(현 평택 대) 85년 서울대를 시점으로 서울시립대, 경원대, 국립 예술종합학교, 목원대, 침례신대, 부산예술대, 국립원주대, 경성대 등 예원학교, 서울예고, 선화예고, 계원예고에까지 기타전공 과목이 앞을 다투어 생겨나고 있으며, 1998년 한해에만도 수원대, 배제 대, 계원예고 등으로 생겨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기존의 연주자들 외에 안형수, 이중기, 김윤배, 신경숙씨 등 젊은 연주자들도 많이 배출되었으며, 베렌트를 시작으로 이예뻬스, 브림, 로메로 일가, 바루에코, 러셀, 루키, 휘스크, 깔레바로, 이즈빈, 트뢰스터, 윌리암스, 야마시타, 신이치 등 세계적인 명 기타리스트들이 초청되면서 국내 기타 계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42년부터 60여년이란 짧지 않은 역사를 통하여 기타인 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70-80년대의 황금기에 비해 현재 클래식 기타 계는 IMF 등 경제적인 어려움과 편엽적인 교육의 문제점 등으로 잠시 침체기라 할 수 있으나, 앞으로 점차 활발한 클래식 기타연주회 등으로 클래식기타만이 지니고 있는 여러 장점들이 각 학교의 CA, 특별활동의 다양성과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조기 교육의 열풍과 더불어 나이 어린 전공자 및 다양한 취미 생들과 기타애호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오늘날에는 평생 직업이 점차 불확실해지면서, 10년 후의 국내 기타 계는 음악교육의 필요성을 이미 직감하고 있으므로 그 때 쯤에는 분명히 더 많은 기타선생들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 올 것이기에 기타 계의 앞날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우리나라 기타 계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는 연주자들과 합주의 역사를 꾸준히 이어오는 단체들이 있으며, 단지 기타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그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의 기타음악계의 도약을 기대해 봄직하다.

<이 글 중에는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빠져있을 것으로,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안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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